소년이 온다 - 김명숙(나비문고 대표)
저는 한강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2015년 ‘그대의 차가운 손’이라는 작품을 읽고 나서부터입니다. 작가의 간결한 문체에 담긴 깊은 통찰력과 섬세한 표현력 매혹적이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런 저런 활동으로 바쁜 데다 읽어야 할 책과 각종 자료들이 늘 쌓여 있어 소설은 거의 못 읽고 지냈습니다. 우연히 공부모임에서 읽기로 한 ‘그대의 차가운 손’이라는 작품을 읽고 작가 한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작품 ‘채식주의자’를 읽고 한강 작가의 매력에 더 빠져들었습니다. 소수자,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탁월한 표현력~! 그래서 한강의 글을 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후 화제작 ‘소년이 온다’를 알게 되었지만 바로 읽지 못했습니다. 2020년 5.18 40주년 활동을 하면서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했으나 읽지 못했습니다.
2021년 5월 울산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독서모임에서 토론하기로 한 책이라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함께 읽기의 힘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내가 많이 좋아하는 작가의 화제작을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 왜?
생각해보니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내가 잘 알고 있는 5.18에 관한 내용이니 좀 뻔할 거라는 생각, 그리고 두 번째는 5.18은 저에게도 아직 아물지 못한 큰 상처였던 것입니다. 그 거대한 국가폭력의 현장을 직면하고 싶지 않은 심리 때문에 나도 모르게 회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85년 5.18에 대한 책(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을 읽었고, 작은 교회에서 관련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 영상을 보러 가는 길에는 사복형사들이 깔려있었습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제가 그 엄청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한강 작가가 작품 속에서 말했듯이 내가 인간인 것이 혐오스러워지는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그 암울함, 절망의 늪에 빠져드는 느낌~~ 아주 힘든 현실 정치에 대한 인식과정이였습니다. 앞서가는 선배들과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키우며 국가폭력에 함께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거대한 우리로 하나가 되었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청춘을 바쳐 민주주의를 외치며 꿈꾸며 운동을 했던 우리들, 이제 60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5.18은 치유되지 못한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헛소리가 아직도 뻔뻔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영상을 보며 경험한 우리에게도 5.18은 큰 상처였는데 그 현장에서 서서 온몸으로 감당했던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의 트라우마는 얼마나 깊었을까요? 지금 돌아다니고 있는 가짜 뉴스가 얼마나 큰 고통일까요?
책 ‘소년이 온다’는 5.18에 대한 뻔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몰랐던 입에 담기 힘든 참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당당하게 살아간 아름다운 사람들, 그러다 만난 고통을 감내하며 죽어가고 살아가는 이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일곱 사람의 시선으로 말해지는 생생한 5.18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쓴 역사 기록 자료입니다.
5.18 민중항쟁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다 되지 못한 현재, 아니 명예가 두 번 짓밟히고 있는 지금, 그래서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41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이 책과 제대로 만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작가 한강은 5.18 민중항쟁을 오래오래 품고 있다가 작가로 힘을 키운 후 소설이라 말할 수 없는 소설로 5.18과 직면하였고 우리에게 함께 직면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5월 함께 ‘이 소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미얀마에서 온 소년과 소녀들도 함께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들에 대한 폭력, 그들의 상처는 우리 모두 상처일 수밖에 없습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책 1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