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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나비문고 2020-03-12 조회수 887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김명숙 사회적기업 나비문고 대표  / 기사승인 : 2020-03-12 10:40:09


 

정희진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1996년 2박3일 여성활동가 연수 특강 시간이었다. 내 취향에 거슬리는 아주 어수선한 스타일의 옷을 입은 그의 강의는 상당히 산만했다. 20년 이상 오랫동안 지켜보니 그 모습이 그의 개성이었다. 다양한 개성을 다 수용하지 못했던 젊은 시절 그 모습은 거슬렸다. 어수선한 강사의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튀는 이야기들을 따라가기가 너무 바빴다. 그런데 강의가 진행되면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어수선한 이야기 속에 틈틈이 빛나는 통찰력이 있었다. 여성으로 살아온 내 답답한 경험들, 정리되지 않고 억울함으로 뒤얽혀 있던 피해의 경험들이 명쾌하게 해석되는 현장이었다. 무지한 나를 흔들어 깨우고 유혹하는 탁월한 분석력이었다. 여성주의 인식론의 매력을 절감한 강의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훈육 받으며 모범적으로 자란 나, 가해자 또는 지배자 남성의 입장에서 스스로 억압하고 있음을 통찰하도록 촉구하는 구원의 빛을 본 강의였다. 


1996년 강의를 들은 후 수차례 울산 초청 강연회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가 쓴 여러 책과 추천 받은 여성주의 관점의 책을 읽고 토론하며 내공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정희진 작가는 내 성장을 적극 자극한 여성운동가이자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본 친구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글쓰기는 빼어나지만 강의는 좀 어수선하게 해 책을 읽고 참가하는 이들을 실망시키는 내 스승이다.


2020년 2월에 그는 <정희진의 글쓰기 1-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와 <정희진의 글쓰기 2-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두 권을 동시에 출간했다. 그 중 두 번째 제목에 더 끌려 먼저 읽었다. 이 책은 정희진의 독서 감상문이다. 64권의 책과 그 글을 쓰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좋은 책이 숨어 있는지 소개하는 글이기도 하고 그의 독서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있는 책이다. 
 

 

 

정희진은 ‘삶의 어떤 순간과 동일시할 수 있는 책 앞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독자이자, 글쓰기의 윤리와 두려움을 잊지 않는 필자이기를 소망한다’고 했는데 그런 독자로 깊이 책을 만나고 조심조심 쓴 글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작은 책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며 오래 머물게 하는 책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의 글은 나를 긴장하게 한다. 느슨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서는 안 되는 그녀의 치열한 글을 만나며 내 뇌가 활성화된다. 아, 그렇지! 아 그렇구나! 깊은 공감의 탄성을 틈틈이 내며 천천히 그녀의 더 깊어진 관찰력에, 통찰력에 빠져든다. 그리고 읽어야 할 좋은 책 목록을 쌓고 있다. 즐거운 일이다. 신뢰하는 이가 추천하는 책 목록은 큰 자산이다. 

 

이 책은 글쓰기가 삶이자 생계라고 말하는 작가의 성장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글쓰기가 가장 중요한 그는 ‘글은 곧 글쓴이다’라고 말하며 윤리적 글쓰기를 지속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기 내부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며 변화하고 성장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글쓰기를 욕망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는 ‘현실을 자각한 여성에게는 일상이 연설대요, 단두대다’라고 말한다. 약자 여성으로 살아온 그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마디로 표현한 문장이다. 약자에게 올바른 앎은 무기다. 자신을 당당히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는 역사를 모르는 여성에게 미래는 없다며 공부할 것을 촉구한다. 그는 앞서서 실천(공부)하며 고통 받고 있는 여성 또는 약자들과 나누고자 글을 쓰고 있다. 그런 치열한 삶 속에서 나온 그의 글은 내게 공감의 큰 위로이자 채찍이다. 무수한 고통을 경과하면서 나날이 깊어지는 스승의 글을 만나는 일은 큰 기쁨이다. 깊이 감사할 일이다. 


“자기 연민과 나르시시즘은 최악의 인성이자 글쓰기 태도인데, 그 덫에 걸리기 쉽다. 예술에서 권력자는 상처받은 사람,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상처가 없으면 쓸 일도 없다.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해석, 생각과 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이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산을 넘는 일이다.” 


김명숙 사회적기업 나비문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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