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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지은입니다

나비문고 2020-04-09 조회수 355
김지은입니다

김명숙 사회적기업 나비문고 대표  / 기사승인 : 2020-04-09 11:51:11




한 달에 한 번 토론하는 나비문고 여성학 공부모임에서 책 <미투의 정치학>을 토론하기로 하고 내가 안희정 성폭력에 대한 글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 책을 읽고 얼마 뒤 3월 초, 피해자 김지은 씨가 책을 냈다. 책 제목이 <김지은입니다>다. 바로 구입해서 금방 다 읽었다. 용기를 내서 책을 낸 김지은 씨와 김지은 씨와 함께 안희정 성폭력사건 진상을 밝히기 위해 힘들게 연대한 분들이 고맙다.

이 책은 성폭력 피해자인 비정규직 노동자 김지은 씨가 겪은 무수한 고통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안희정의 성폭력 상황에 대해서는 다양한 언론을 통해 들었으나 그건 아주 일면적인 것일 뿐이었다. 이 책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 김지은 씨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성폭력 가해자 안희정의 수행비서는 한 마디로 노예였다. 거의 24시간 비상대기상태에 온갖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비서의 업무라고 할 수 없는 사적인 일들을 업무로 처리해야 했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상태에 김지은 씨는 처해 있었다. 쉬운 문체로 잘 정리한 글이라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지만 분노가 치밀어 읽기 힘들기도 했다.

한 때 정치인 안희정은 민주적이고 여성을 존중하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언론을 통해 보여준 그런 이미지는 그야말로 조작된 이미지였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너무나 다른 모습, 악마가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겠구나,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저런 범죄자가 또 얼마나 많을까? 한때 좋아했던 예술가 고은, 김기덕, 조재현 등등이 그랬다. 놀랍고 슬픈 일이다. 그런데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이 큰 비극이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이슈가 됐을 때 이 사건은 다양한 곳에서 많이 토론됐다. 그때 많은 사람이 진보적인 여성도 김지은 씨가 미투에 나선 것은 질투심 때문이라고 해서 답답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진상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시민들에게 안희정 측과 언론이 그렇게 여론몰이를 했기에 대다수가 그렇게 떠밀려 가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성폭력 사건을 여자 문제로 둔갑시키는 데 어렵지 않은 것이 한국이다.

대통령후보인, 무수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진 잘 나가는 정치인 안희정과 힘없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대등하게 만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이없는 생각인가? 대등할 수 없는 권력관계는 1심 판결에서 드러났다. 범죄자 안희정이 무죄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이후 많은 여성단체 활동가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안희정의 성폭력이 범죄로 공인됐다. 안희정의 범죄를 밝히는 재판은 참으로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다고 책 <미투의 정치학>에서 말하고 있다(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1심 재판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책 <김지은입니다>를 읽은 후 진실을 공유하고 싶어 사람들을 만나면 틈틈이 이 책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내 말을 듣고 몇몇 남성은 그 책을 모두 어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약자는 진실을 말해도 위험한데 하물며 거짓으로 책을 낸다는 것을 상상하는 그 친한(?) 남성에게서 철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래 노동운동을 한 진보진영의 남성이었다.

성폭력과 연애를, 범죄 행위와 여자 문제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성폭력에 너무나 너그럽고, 성폭력 문제는 그 심각성에 비해 너무나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성폭력은 형태만 바뀌어가며 반복되고 있다. 사이버 시대에 맞게 성폭력 범죄는 나날이 진화하고 있으나 그 대응은 너무나 미비하다. 소라넷 사건으로 사이버 성폭력의 심각성이 크게 문제가 됐으나 범죄자들은 크게 처벌받지 않았다. 그 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입에 담기 힘든 성폭력이 자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n번방 사건으로 드러났다.

n번방 사건을 알고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리 충격적인 상황이 아니다. 이미 소라넷 사건 때 많이 드러난 일들이다. 그때 대부분 처벌되지 않은 범죄들이 반복됐을 뿐이다. n번방 범죄자들을 보니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성폭력 범죄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느낀다.

<김지은입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를 직시하며 성찰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읽기 어렵지 않은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가 닿기를…


김명숙 사회적기업 나비문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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